병인 순교 150주년 기념 성지순례 마치고 <1>

by 문종균 (요아킴) posted Oct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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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병인 순교 150주년 기념 성지순례 마치고 <1>                            
성지순례는 “은혜로운 장소”를 찾아가 순교자를 믿으면 “은총의 때“를 맛보는 신자들의 특권이다. 올해는 병인년 순교 150주년의 해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주신 신앙 선조들의 삶을 본받고 신앙을 기리기 위해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다. 천주교성지는 모두 111곳으로 서울교구 순교지를 중심으로 코스를 정하고 거제출신 김라파엘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도움 받기로 했다. 지난 10월8일(토) 가을비가 내리는 새벽에 고현2 파티마의 성모꾸리아『크리스챤의 도움 쁘레시디움(단장:반태윤 안드레아외 8명)』은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스스로의 미지근한 신앙심을 일깨우고 보다 나은 신앙인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본당에서 출발했다.
첫째날▮절두산성지는 조선시대부터 한강변의 명승지로 양화나루 잠두봉이라 불렸던 이곳은 병인박해(1866) 당시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머리가 잘리는 죽음을 당했다 하여 현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후 순교자들의 넋이 서려 있는 이 지역을 성지로 조성하였고 병인박해 100주년이 되던 1967년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과 박물관이 준공되었다. 갓 모양의 지붕과 미끄러져 내리는 추녀, 부챗살 모양으로 설계된 내부, 자연과 어우러진 한국 천주교의 대표 건축물로 성인유해실, 27위순교성인, 순교자박물관, 형구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토요일이라 전국에서 많은 순례자가 방문했다. 한강 유일의 원형 보존지역인 이곳은 1997년, 우리 역사의 중요한 유적지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사적 제399호로 지정되었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아홉분의 성인과 복녀 이성례(마리아)가 순교한 곳으로 1939년 기해박해를 장엄하게 끝맺는 거룩한 땅이다. 1939년12월27일 박종원(아우구스티노)외 여섯 분이, 12월28일 홍영주외 두 분이 순교하였다. 특히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아내이자 최양업 토마스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마리아)순교자는 기해년(1839년)에 체포되어, 한때 옥에서 죽어가는 어린자식 때문에 흔들렸지만 맏아들 최양업 토마스 신부로 인해 다시 체포되었을 때는 용감하게 배교를 취소하고 끝내 순교하였다. 이성례(마리아)는 2014년8월16일 프란체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순교성지 새남터기념성지에서는 김라파엘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성지설명을 들었다. 4대박해 동안 순교한 성직자는 모두 열네 분으로 이곳 새남터에서 열한분의 성직자들이 순교하였고 조선천주교회의 지도자급 평신도 세 분이 순교한 곳이다. 먼저 중국교회로부터 조선에 파견되었던 중국인 주문모신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신부,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범 라우렌시오주교와 현석문 가롤로 성인등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현재 새남터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9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
▮서소문 순교성지와 약현성당은 ‘서소문 밖 네거리’로 불렸던 한국 최다 순교성지 탄생지인 새남터와 더불어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었다. 이곳은 신유박해(1801)를 시작으로 기해박해(1839년),병인박해(1866년)를 거치며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이 가운데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비롯하여 기해박해 순교자 41위와 병인박해 순교자 3위가 1984년 성인반열에 오르셨으며 신유박해 순교자 25위와 1819년 순교자 2위가 복자로 선포되었다. 서소문 순교성지기념성당 중림동 약현성당은 1898년 종현에 완공된 명동성당보다 6년이나 먼저 세워진 한국최초의 고딕양식 벽돌조 성당으로 1891년10월에 착공하여 1892년 완공되었다. 1977년 국가문화재(사적제252호)로 지정되었으며 본 성당건물과 서소문순교지기념관, 가톨릭출판사, 가톨릭대학교회음악대학원, 서소문순교성지전시관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한국 가톨릭문화의 중심지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며 주변 노송이 어우러진 성모상은 더욱 아름다웠다. 저녁은 장춘동 족발맛집에 들려 ‘돼지족발’과 소주한잔을  곁들인 후 그냥 숙소로 일찍 가기가 아까워 ‘명동야시장’ 갔더니 먹거리부터 액세서리와 패션의류등 판매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중국,동남아인들이 많아 외국에 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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